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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은 좁히고 울타리는 높인다”...바이든 정부가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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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주차 딜로이트 주간 글로벌 경제 리뷰는 다음의 주요 이슈에 주목했습니다.

1. ”마당은 좁히고 울타리는 높인다”…바이든 정부가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질서
  • 워싱턴 컨센서스의 시작과 끝
  • 뉴 워싱턴 컨센서스 등장
  • ‘높은 울타리가 쳐진 좁은 마당’과 ‘디리스킹’
  • 뉴 워싱턴 컨센서스를 둘러싼 찬반 논쟁

1. “마당은 좁히고 울타리는 높인다”...바이든 정부가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질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제안한 수정된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를 둘러싸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4월 27일 미국 워싱턴DC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경제 리더십 회의에서 처음 발의해 ‘설리번 패러다임’으로도 불리는, 이른바 ‘뉴 워싱턴 컨센서스’(a new Washington Consensus)는 앞으로 미국이 펼쳐갈 경제·외교·군사 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설리번 보좌관이 이를 통해 바이든 정부의 ‘빅 픽쳐’와 대중(對中) 관계의 딜레마를 가장 분명히 제시했다고 평가한다.1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백악관에서 세계 동향을 면밀히 살피는 ‘매의 눈’ 역할과 글로벌 정책을 결정하는 ‘치밀한 뇌’ 역할을 한다. 외교적 수사가 아닌 실제로 세계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 정부의 경제·외교·군사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과거 컨센서스의 폐해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새로운 컨센서스를 발의했다는 것은 세계질서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방증이다.

딜로이트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아이라 칼리시(Ira Kalish) 박사의 견해를 중심으로 기존 워싱턴 컨센서스를 돌아보고, ‘뉴 워싱턴 컨센서스’가 의미하는 새로운 세계질서와 이를 둘러싼 찬반 논쟁을 알아본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시작과 끝

워싱턴 컨센서스는 대략 1990년대 초부터 2017년까지 세계질서를 주도했다. 영국 정치경제학자 존 윌리엄슨(John Williamson)이 1989년 저서에서 남미 등 개도국을 위해 제시한 10가지 개혁 처방을 ‘워싱턴 컨센서스’로 명명한 데서 시작됐다. 이는 낮은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강력한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정부 정책에 대해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발전 모델에 기반한 관점을 보여준다. 각국 정부는 자유무역, 자본의 자유 흐름, 시장 중심 규제, 재정 정직성(fiscal probity)을 갖춘 경기대응 정책 등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보조금 정책을 포함해 어떠한 형태이든 시장경제 개입을 지양해야 한다. 개도국이라는 용어 대신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배경이기도 하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10가지 개혁 처방
  1. 재정 규율: 정부는 재정적자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과도한 공공부채를 지양해 거시경제 안정성을 꾀한다.
  2. 공공투자 우선순위 재편: 공공투자는 보조금 또는 과도한 군비 지출을 지양하고 교육, 의료, 인프라 등 분야에 초점을 맞춘다.
  3. 세제 개혁: 세금 기반을 확대하고 세율을 낮춰 경제성장과 투자를 촉진한다.
  4. 금리 자유화: 대출 및 투자 결정을 왜곡할 수 있는 통제 대신 시장의 힘이 금리를 결정하도록 한다.
  5. 경쟁력 있는 금리: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유지한다.
  6. 무역 자유화: 관세와 쿼터 등 국제무역을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해 경제 효율성과 세계경제 통합을 강화한다.
  7. 외국인직접투자(FDI) 자유화: FDI를 장려해 제약을 없애고 우호적인 투자 환경을 창출한다.
  8. 민영화: 국유기업 민영화로 효율성을 향상하고 경쟁을 촉발한다.
  9. 규제 완화: 규제를 완화하고 관료주의 장벽을 제거해 기업 발전과 기업가 정신을 뒷받침한다.
  10.  지식재산 보호: 경제 발전과 투자에 핵심 요소인 지식재산을 보호하고 계약을 강제하는 법적 체제를 구축한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 ▵중국의 세계경제 통합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주요20개국(G20)의 보호무역주의 반대 공동성명으로 이어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의 에드워드 루체(Edward Luce) 칼럼니스트는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했을 때가 워싱턴 컨센서스의 최고 전성기였다고 회상했다.2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찬반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찬성론자들은 경제성장 가속화를 최대 성과로 꼽는다. 시장 중심 개혁, 자유화, 규제 완화 덕분에 투자와 경쟁이 활성화되고 자원이 더욱 효율적으로 배분돼 경제 확장이 가속화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이 외에도 세계경제 통합에 따른 인플레이션율 하락, 소비자 구매력 향상, 고용 증대, 개도국의 기아 감소 등을 성과로 꼽는다. 또 이들은 워싱턴 컨센서스 덕분에 폐쇄적인 전제주의 국가들의 개혁 및 개방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과정을 주도한 미국은 세계경제의 핵심 리더이자 설계자 지위를 확립하고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반대론자들은 시장 중심 개혁이 소득 불평등을 심화해, 소수의 사회 계층만 이득을 보고 대다수는 뒤처졌다는 점을 가장 큰 폐해로 지적한다. 시장의 힘은 커지고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부와 권력이 소수에 편중됐다는 것이다. 또 작은 정부를 지향하다보니 사회안전망도 덩달아 축소돼, 취약계층이 더욱 부정적 영향을 받아 사회 불균형이 심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적절한 규제 체제가 마련되기도 전에 급격하고 광범위한 자유화가 이뤄져 경제 변동성이 급증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자본 유출입과 환율 변동이 난폭해지며, 크고 작은 금융위기가 경제 불안정을 초래한다는 설명이다. 이 외에도 워싱턴 컨센서스는 환경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 고속성장과 규제 완화에 집중해 자연자원을 과도하게 개발해 심각한 환경 오염을 초래하고 지속가능 개발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찬반 논쟁이 지속되기는 했지만 워싱턴 컨센서스는 서방 주요국의 초당적 지지를 얻었다. 미국에서는 클린턴·부시·오바마 행정부가, 영국에서는 메이저·블레어·브라운·캐머런 총리 내각이 모두 워싱턴 컨센서스를 따랐다.

하지만 1980년대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축소된 영향에 무역 자유화에 대한 민주당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통과를 위해 공화당에 의존해야 했다. 이후 오바마 전 대통령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할 당시 공화당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경험도 있다. 결국 2016년경부터 양당 모두 무역 자유화에 반대하는 쪽으로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칼리시 박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높은 관세 부과와 TPP 탈퇴 등 노골적인 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질주한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도 좀 더 미묘하기는 하지만 역시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보이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로 워싱턴 컨센서스에 완전히 등을 돌린 셈이다. 대다수 신흥국들은 재화와 자본의 자유 흐름에 대해 예전보다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중산층을 핵심 지지기반으로 삼으며 미국 경제의 동력으로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세계경제 통합으로 미국 내 다수 공장들이 문을 닫으며 블루칼라 일자리가 대거 사라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이 ‘중산층을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뉴 워싱턴 컨센서스 등장

설리번 보좌관은 브루킹스연구소 연설에서 대내외 여건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컨센서스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3 그는 “종전 후 지난 수십년간 미국이 주도한 세계질서에 균열이 커지고 있다. 세계경제 전환으로 수많은 미국 근로자와 지역사회가 소외됐고, 금융위기로 중산층이 와해됐으며, 팬데믹으로 공급망 취약성이 드러났고, 기후변화로 인류의 삶이 위협받고 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과의존의 위험이 부각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선진국과 신흥국이 네 가지 근본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1. 산업 기반의 공동화

설리번 보좌관은 시장의 힘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시장 효율성이 과도하게 단순화됨으로써 전략적 물자의 전체 공급망과 관련 산업 및 일자리를 타국에 빼앗기는 결과가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무역 자유화가 미국의 상품 수출을 진작할 것이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일자리와 생산능력만 ‘수출’한 셈이 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성장 불균형을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금융 부문 등은 자유화와 통합으로 큰 혜택을 입었지만, 반도체와 인프라 부문은 위축됐다는 설명이다. 

2. 지정학적 및 안보 경쟁으로 변화한 환경이 경제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

설리번 보좌관은 “한층 통합된 세계경제 속에서 각국이 더욱 개방적이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 더욱 평화롭고 협력적인 법치 기반의 세계질서가 수립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시장의 논리를 거역하며 막대한 보조금을 무기로 전통적 제조업뿐 아니라 첨단기술 부문을 육성하는 중국에 미래를 정의할 핵심 기술의 경쟁력을 빼앗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의 군사 야욕과 러시아의 영토 확장 야욕이 여전히 꺾이지 않았음을 언급하며, 세계경제 통합이 양국을 협력적이거나 책임감 있게 만들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3. 기후위기 가속화 속 공정하고 효율적인 에너지 전환

설리번 보좌관은 기후 목표를 달성하려면 경제성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틀렸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일자리’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청정에너지 경제를 구축하는 것이 21세기 가장 중요한 성장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기회를 잡기 위해 혁신을 촉진하고 비용을 감축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투자 전략을 주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4. 경제 불균형과 이로 인한 민주주의의 와해

설리번 보좌관은 무역 기반 경제성장은 포용적인 성장이 되지 못했고, 제조업과 중산층의 기반을 와해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진단했다. 역진세율, 공공투자 대폭 삭감, 고삐 풀린 기업 집중(corporate concentration, 기업들의 결합에 의한 시장 독점), 애초에 미국 중산층을 만든 노동운동을 저해하는 조치 등 수십년에 걸쳐 시행돼 온 경제정책이 경제 불균형이라는 ‘부정적 낙수 효과’를 가져왔다는 설명이다. 이어 오바마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 인프라 투자, 사회안전망 확대, 노동자 권리 보호 강화 등을 위한 노력을 펼쳤으나 공화당 반대에 부딪쳐 좌초됐으며, 미국 제조업을 강타한 이른바 ‘중국 쇼크’를 제대로 예측, 대응하지 못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 모든 요인들로 인해 강력하고 회복력 있는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사회경제 기반이 약해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과 세계가 직면한 시대의 문제를 위 네 가지로 정의하고 그에 대한 첫 번째 대응으로 ‘To Build’라는 핵심 표어로 정리되는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을 주창했다. ▵생산과 혁신 ‘능력’(capacity) ▵자연재해와 지정학적 쇼크를 이길 수 있는 ‘회복력’(resilience) ▵강력하고 활기가 도는 미국 중산층을 재확립하고 전 세계 노동자를 위한 기회를 창출하는 ‘포괄주의’(inclusiveness)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두 번째 단계는 파트너 국가들 또한 이러한 능력, 회복력, 포괄주의를 구축하도록 하는 것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미국은 국내 산업정책을 거침없이 추진하겠지만, 우방국들을 절대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방국들이 미국의 길에 동참하기를 희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필요로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세 번째 단계는 자유무역협정(FTA) 등 전통적 무역협정의 한계에서 벗어나 새롭고 혁신적인 국제 경제 파트너십을 구축해 시대의 핵심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단순한 관세 정책이 아니라 공급망 다각화와 회복력 강화를 목표로 대내외 경제전략을 완전히 통합할 수 있도록 우선순위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 번째 단계는 다자 무역 시스템 재편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공정 경쟁, 개방, 투명성, 법치주의 등 세계무역기구(WTO)의 기반이 되는 공동의 가치를 여전히 존중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정에너지 전환, 변화하는 신흥시장 역학, 공급망 회복력, 인공지능 급발전, 생명과학 혁명 등으로 세계가 급변하고 있는 만큼 이에 걸맞는 다자 무역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세계은행(WB)과 각 지역별 개발은행의 운영모델을 업데이트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높은 울타리가 쳐진 좁은 마당’과 ‘디리스킹’

칼리시 박사는 설리번 보좌관이 마지막 의제로 언급한 ‘높은 울타리가 쳐진 좁은 마당’(small yard and high fence)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에 대해 선별적 조치라며, 중국이 반발하는 ‘기술 봉쇄’나 신흥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일부 첨단기술과 군사적 위협이 되는 소수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 표현은 대체로 미국의 뜻(높은 울타리)을 따르는 동맹국들 위주(좁은 마당)로 다자 체제를 구축해 나간다는 입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바이든 정부의 무역정책에 대해 “경쟁우위의 원칙에 따른 무역 효율성을 유지하면서도 미국과 파트너국들의 경제 회복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4 그러면서 바이든 정부의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접근법은 신뢰할 수 있는 많은 무역 파트너와 경제 통합을 심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프렌드쇼어링은 보호무역주의와 분명 다른 것으로, 경제 회복력과 무역에 의한 효율성을 모두 얻기 위함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칼리시 박사는 이 표현을 대중 관계에 대입해 “분쟁 소지가 있는 영역에서는 경제 교류를 제한하되, 여타 영역에서는 교류를 계속하며 이익을 계속 꾀한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가 커다란 그물망을 던져 중국과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처리하려 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해결해야 할 문제의 범위를 좁히되(좁은 마당) 이에 대해서는 더욱 철저하고 무자비하게 대응(높은 울타리)한다는 입장이라는 설명이다. 

앞서 설리번 보좌관은 “가능한 부분에서는 중국과 협력하고, 중국과의 경쟁은 책임감 있는 태도로 관리한다”고 말했다.

칼리시 박사는 또 다각화를 장려하기 위해 동맹국들과 협력함으로써 공급망을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제거)한다는 내용에도 주목했다. 경제적 단절을 의미하는 ‘디커플링’(dicoupling)과 비교하면 미묘하고도 중대한 변화가 감지되는 표현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핵심 제품의 공급원이 복수로 존재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며 “중국이 아이폰이나 태양광 패널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애초에 ‘디리스킹’이라는 표현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 “유럽은 여전히 중국과 협력하고 무역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유럽의 대중 정책은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이라고 언급하면서 국제사회의 화두가 됐다.5 이어 디리스킹은 지난 5월 20일 발표된 G7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도 등장한다.6 이튿날인 21일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대중 관계에 있어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과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7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이 세계질서에 대한 주요국의 공통적 시각으로 확립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뉴 워싱턴 컨센서스를 둘러싼 찬반 논쟁

칼리시 박사는 뉴 워싱턴 컨센서스를 둘러싼 찬반 논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우선 찬성론자들은 과거의 워싱턴 컨센서스로 인해 붕괴된 산업 분야가 혜택을 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핵심 산업에 대한 투자가 늘면 생산성이 향상되고, 경제성장이 가속화하며, 소득 불균형이 완화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이보다 긴 사설을 늘어놓고 있다. 첫째, 바이든 정부가 공급망 디리스킹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자칫 디커플링으로 이어져 통합된 세계경제가 주는 혜택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둘째, 보조금 정책은 종종 취약 산업과 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에 정작 생산성이 높은 산업과 기업에 투입돼야 할 희소 자본이 엉뚱한 데 쓰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셋째, 미국의 보조금 정책에는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이미 유럽연합(EU)의 반발을 샀고, 미국과 EU의 경제 통합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게다가 보조금 정책으로 구현된 보호무역주의는 소비자물가 상승과 실질소득 증가세 둔화라는 또다른 폐해를 낳을 수 있다. 

FT의 루체 칼럼니스트는 ‘뉴 워싱턴 컨센서스’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시작한 미국만의 정치 컨센서스라고 비난했다.8 바이든 행정부는 표현을 순화했을 뿐 더욱 가차없는 보호주의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바이든의 정책에 대해 ‘인간적인 얼굴을 한 트럼피즘(Trumpism)’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루체는 또한 새로운 컨센서스는 경제적 수단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그 뿌리에는 중국 억제라는 국가안보 목표를 달성한다는 지정학적 의도가 자리잡고 있다고 해석했다. 결과적으로 구 컨센서스가 ‘포지티브 섬 게임’(positive sum game)이라면 신 컨센서스는 ‘제로 섬 게임’(zero sum game)이라는 것이다. 과거 컨센서스가 긍정론에 기반한다면 새로운 컨센서스는 비관론에 기반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스스로 주도한 세계질서에 대한 믿음을 잃었는데, 어떻게 중국을 이러한 질서에 편입시킬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남겼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러한 비난을 의식한 듯 “뉴 워싱턴 컨센서스가 미국만의 것, 혹은 미국과 서방만을 위한 것이고 다른 지역을 배제한다는 주장은 완전히 오해다. 이 전략은 더욱 공정하고 항구적인 세계 경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함이며, 미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시민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이 제조업 일자리 회복을 강조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이라는 지적도 제기한다. 제조업 일자리가 서비스업보다 더 높은 임금을 보장하던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제조업 일자리 보조금 또는 보호 정책은 소비자물가만 끌어올릴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는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통해 노동시장의 스킬(skill)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기존 워싱턴 컨센서스의 반대론자로 유명한 대니 로드릭(Dani Rodrik) 하버드대 교수는 새로운 컨센서스를 반기면서도, 하나의 컨센서스로 다수의 목표(기후변화, 산업 육성, 국가안보)를 달성하려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9 또한 옛 컨센서스가 그러했듯 새로운 컨센서스도 일반적인 통념으로 자리잡으면 만병통치약으로 잘못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컨센서스가 공정성과 지속가능 성장 측면에서 단점을 드러낸 만큼, 새로운 컨센서스도 새로운 위험을 동반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공방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확인됐듯, 현재 미국과 유럽 정계에서는 새로운 컨센서스를 향한 초당적 지지가 이뤄지고 있다.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 자유무역이나 시장 자율성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는 것이다. 대신 첨단기술과 청정에너지 발전을 위한 투자를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나타나고 있다. 

칼리시 박사는 이러한 추세 속에서 핵심 산업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 덕분에 관련 산업의 기업들뿐 아니라 이들과 협력하는 전문서비스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창출될 것이라 전망했다. 또 이러한 보조금이 주요국에서는 단기적으로 경기부양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큰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 육성과 투자가 세계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해,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릴 위험이 있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특히 그는 미국이 무역 자유화를 포기하고 공급망 위험을 줄이기 위한 협력에만 집중하게 되면, 무역 자유화의 혜택은 물론 지정학적 영향력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이 주도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는 무역 장벽을 낮추지 않는 14개국 그룹으로, 공급망 위험을 제거하고 청정에너지 협력과 같은 지정학적 문제에 대한 협력을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 발표한 공급망 이니셔티브는 의사소통을 유지하기로 한 정도에 지나지 않고 이 프레임워크가 미국 시장에 대한 더 나은 접근성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나라와 구속력이 있는 FTA를 체결하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입지가 강화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오히려 인태 지역 국가들은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매력을 느끼고 있어 중국의 영향력이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칼리시 박사는 이러한 결과 미국은 무역 자유화의 경제적 이익과 지정학적 영향력을 점차 놓치고 있으며, 아직은 세계 최대 경제국이지만 무역에서 전진하지 못한다면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실효관세율을 기록한 미국은 이미 소비자 지불 가격을 높여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는 한편, 투자를 억제하고 생산성 향상을 저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역 자유화는 최근까지만 해도 공화당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노동계급 백인 유권자들에게 집중하는 공화당은 이제 자유 무역이 이들의 삶을 혼란에 빠뜨린 주범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칼리시 박사는 기업 커뮤니티는 대부분 무역 자유화의 지속을 지지하고 있지만 공화-민주 양당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무역 자유화를 지지하는 그룹이 양당에 모두 있지만, 이제 이들이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 Eyeing China, Jake Sullivan floats new ‘Washington consensus’ - The Washington Post
2 The new Washington consensus | Financial Times (ft.com)
3 Remarks by National Security Advisor Jake Sullivan on Renewing American Economic Leadership at the Brookings Institution | The White House
4 Resilient Trade by Janet L. Yellen - Project Syndicate (project-syndicate.org)
5 EU must seek to de-risk rather than decouple from China, von der Leyen says | Reuters
6 'We are not decoupling': G-7 leaders agree on approach to 'de-risk' from China (cnbc.com)
7 Biden sees shift in ties with China 'shortly' | Reuters
The new Washington consens | Financial Times (ft.com)
9 A new world order seeks to prioritise security and climate change (econom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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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이트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네트워크(Deloitte Global Economist Network, DGEN)는 다양한 이력과 전문성을 지닌 이코노미스트들이 모여 시의성 있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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